폐허 속의 역사 - 원명원(圓明園)
한동안 포근했던 날씨는 어느덧 영하의 날씨로 떨어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점 두꺼워지는 것을 보면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오늘은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어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의 달력도 이제 마지막 한 장 밖에 남지 않았고 스산한 날씨와 더불어 왠지 가라앉는 기분이 드네요.
오늘은 이러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북경의 “위엔밍위엔(圓明園)” 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위엔밍위엔(圓明園)” 은 북경의 서북쪽에 위치한 청대(淸代) 황실의 별궁입니다. 서쪽으로는 이화원(頤和園), 동쪽으로는 청화대학(淸華大學), 남쪽으로는 북경대학(北京大學)이 근접해 있답니다. 면적은 약 350ha로, 원(園)내의 호수면적(水面)이 그 중의 3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원래는 원명원(圓明園), 장춘원(長春園), 기춘원(綺春園) 등으로 나뉘지만, 현재는 이 세 개를 통틀어 원명원(圓明園)이라고 부른답니다.
원명원(圓明園)의 유래를 살펴보면, 원래는1709년 강희제(康熙帝)가 넷째 아들인 윤진(胤縝)에게 지어준 별장이라고 하네요. 윤진(胤縝)이 황제에 즉위(雍正帝)하고 난 후, 1725년 황제의 정원으로 조성했다고 합니다. 그 뒤 서양 문화에 관심이 많던 건륭제(乾隆帝)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가미한 유럽식 건축의 중국화된 건물(西洋樓)을 짓고, 원명원(圓明園)을 더욱 확장하였답니다. 특히 건륭제는 각별히 원명원(圓明園)을 사랑해서, 각종 골동품과 서화집(書畵集), 금은보화 등을 이곳에 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2차 아편전쟁인 ‘애로호 사건’ 과 광서(廣西 - 중국의 남방)지역에서의 프랑스 신부(神父) 처형 사건이 빌미가 되어, 1860년 영불(영국과 프랑스)연합군은 대규모의 군대(약 2만4000 여명)를 동원해 황궁(皇宮)으로 진격하면서 원명원(圓明園)의 유물을 약탈하고(약탈의 주역은 프랑스 군대였다고 하네요) 심지어는 방화(放火 - 방화의 주범은 영국군이었답니다)를 하여, 원명원(圓明園)이 사흘 동안 타올랐다고 하네요.
그리하여 현재 그 화려했던 면모는 이미 사라지고, 무너지다 남은 돌기둥과 대리석 조각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을 뿐 황량한 모습 만이 처량하게 남아 있답니다.
과거의 부귀영화(富貴榮華)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저무는 햇살에 비치는 돌조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쓸쓸한 뒤편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 드네요.
그럼, 사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원명원(圓明園)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원명원(圓明園) 입장권.
가격은 10위안(1,300원)으로, 안에 들어가서 원명원(圓明園)의 역사 현장인 서양루(西洋樓)를 관람하려면 15위안(1,950원)의 표를 따로 사야 합니다.
원명원(圓明園) 입구 전경.
공사를 하는지 호수의 물이 거의 말라 군데군데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돌다리.
원명원(圓明園)이 한창 번성했던 시기에는 돌, 벽돌, 나무로 만든 다리가 약 100 여 개가 있었는데, 영불 연합군의 약탈과 방화로 현재 유일하게 이 다리만 간신히 모습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멀리 다리 가운데에 사람들이 몰려 있네요.
다름이 아닌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습니다.
어른 팔뚝만한 붉은 잉어들이 먹이를 받아 먹으려고 몰려 있네요.
한쪽 옆에서는 이렇게 물고기 먹이를 3위안(390원)에 팔고 있습니다. 따로 물고기를 양식하는 비용이 들지 않아 좋겠네요. 하하~~
서양루(西洋樓)로 가는 중간에 다리를 놓고, 호수 가운데 있는 섬에 남방 지역의 가옥을 몇 채 달랑 지어놓고 따로 입장료를 받고 있답니다. 사실 볼거리는 거의 없으면서 어디를 가나 돈을 받네요.
서양루(西洋樓)의 한 켠에 이렇게 예전의 모습을 복원한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어 사람들은 돈을 둘둘 말아 안에 돈을 넣습니다. 돈을 넣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기복(祈福) 신앙의 하나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액수가 작은 돈들이네요. 하하~~
화려했던 부귀영화(富貴榮華)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페허의 흔적만 남은 옛 터.
그 무거운 돌덩이들을 어떻게 부쉈을까? 당시 부셨던 영불 연합군도 고생 좀 했겠네요.
암울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도 이렇게 뜨거운 연애를 하고 있네요.
사랑에는 시도 때도 없나 봅니다. 하하~~
서양루(西洋樓)의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이렇게 대나무를 엮은 통로도 있답니다.
역사의 현장을 뒤로 한 채 나오는 길에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 속에 묻힐 원명원(圓明園)을 생각하면 쓸쓸하고 처량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는 법입니다. 어둠을 뒤로 한 채 떠오르는 환한 태양을 맞이하며 마지막 12월을 힘찬 발걸음으로 마무리하길 바래봅니다.
모두들 힘내시고... 아자 ~ 아자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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